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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2-06 12:56
김약국은 어디?
 글쓴이 : 조수정
조회 : 2,216  

 

날씨가
 찌쁘둥하다. 지퍼를 목까지 채워 올리고 어깨마저 오그러드는 아침인데 날이라도 화창히 개면 마음이 좀 가벼워지려나. 모호한 마지막 때문에 비극이었으나 그 끝은 열려있는 소설을 보고 나면 몇일 동안은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든다.

 

새벽까지 일갈에 읽어버린 김약국의 딸들, 설지 않은 지명과 눈에 보이는 듯한 파시, 충렬사와 세병관. 그리고 그 어디메쯤 청기와집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그 길을 걸으면 찌그덕 하는 대문을 밀고 단장을 든 정갈한 모시 두루마기를 입은 김약국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함이 들었다.  담뿍담뿍 들어있는 사투리는 두어번 잘만 읽으면 속마음도 읽히는 것 같이 환히 보인다. 작가가 버스정류장, 식당의 한 벽에서도 만날 수 있는 통영의 여인인 것이 신기하고 또 감사하다. 

 

무엇 때문인지 용옥의 삶이 계속 마음에 밟힌다. 김약국의 딸들 가운데 가장 마음을 쓰게 만드는 이가 그녀다. 바람난 용숙과 용란은 저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고 다른 이를 위한 희생과 헌신은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하고 싶은 말들 참지않으며 미얄스럽게도 삶을 꾸린다. 어린 용혜와 용빈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신여성이라는 권력이 있다. 그러나 용옥은 달랐다. 가족에게 헌신하고 묵묵히 희생했다. 오로지 종교의 힘으로 정없는 남편과 풍비박산이 난 친정, 차마 입에 담기 조차 수치스러운 시아버지를 봉양했다. 작가는 왜 그녀에게 그런 삶을 주었나 궁금하다. 용빈과 용혜, 용숙과 심지어 미쳐버린 용란에게서도 실낱같은 희망은 발견할 수 있다. 하긴, 젖먹이 아이를 혼자 남겨두지 않고 두 팔로 꼭 껴안아 함께 익사하게 한 것이 마지막 동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살았더라면 자신이 받은 오욕과 치욕은 무엇으로도 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더 고통스럽고 더 신산했으리라 어렵지 않게 추측한다. 그녀에게 죽음이라는 안도를 선물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야 겠다. 사랑보다 더 아픈 그리움과 연민으로, 그녀의 남편 기두 역시 나처럼 허전함과 공허, 죄책감과 안스러움으로 그녀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기두에게 그렇게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을 준 것이다.

 

김약국의 질곡과 몰락에는 내 삶을 안도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뻐근하고 답답하고 애닯지만 그 집안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이만한 살이라도 되니 참 고맙다 싶은 마음, 참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드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극을 읽고 비극 속에서 우리를 돌아보나 보다.

 

 몇일전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박경리 기념관에서 이런 싯귀를 봤다.

 

       <바느질>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이 안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게 아니었을까

 

 

그녀가 살려놓은 무수한 인물들, 책에서만 생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내 마음에 공명과 들끓는 애닯음을 주는 무수한 인물들 역시 한 땀 한 땀 바느질에서 왔다고 한다. 그들이 눈물을 철철 흘리고 피가 끓고, 머리와 가슴이 터질듯 질곡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 또한 한 땀 한 땀의 바느질에 다름아닐 것이다. 기우고 기우고 또 기워 헤진 조각을 잇고 마음을 붙여 만들어 나가는 삶, 한걸음 한걸음 쳇바퀴 돌듯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 그 비극 속에도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 몰락과 파멸 속에도 버티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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