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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한명숙의 죄(글쓴이 노혜경)

  • 희망찾기
  • 2010-04-01
  • Hit : 7,681
노무현, 한명숙… 그들의 죄
(서프라이즈 / 노혜경 / 2010-04-01)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공판이 하루 이틀 진행되고 모욕주기와 불신조장의 시간이 쌓여가면서, 내 마음속에서는 흡사 4대강 바닥에 쌓인 오니가 흙탕으로 떠오르듯 깊이 쟁여둔 상처의 고름 주머니가 하나둘씩 터진다.

아파서다. 나는 오랫동안 말문이 닫혔다. 쉬이 열리지 않았다.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이 밤, 내 마음에 대고 노크를 한번 해 본다. 똑! 그리고 다시 똑! 똑! 똑!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라고.

작년 이맘때 외롭기 짝이 없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 틀림없는 노무현, 검찰청에 출두하던 그를 기억한다. 가슴이 답답해서 봉하로 되돌아가는 버스 뒤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가 되돌아오던 일을 기억한다. 그때 그 돌아섬의 순간 내 마음을 타고 흘렀던 섬광은 무엇이었을까. 이별 당함의 예감이었을까, 그가 우리를 버리기 전 먼저 그를 버렸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등지고, 그가 가리라는 예감이었을까.

전두환은,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조금만 참지, 라고 말했다고 한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어떤 수모도 그 어떤 고뇌도 곧 지나간다. 사람들은 곧 잊고, 조만간 그 모든 일들은 한때의 무용담처럼 추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이 자신의 생에 대해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진지하고 진실하게 인생에 달려들었던 한 사람이 그렇게 가야만 했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그 참담한 이별이 가져다준 역설, 은총의 선물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이러저러하게 긴 질문의 목록이 생겨났기를 나는 바랐다.

그랬는데,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지금 이 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노무현의 죽음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아닌가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역사가 총체적인 반성을 요구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권력자들만이 아니다. 언론도 그렇다. 이들이 한명숙 재판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방선거에 고정되어 있다. 아니 정치에 고착되어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 유리하다, 불리하다, 지방선거 판도에 영향을 미친다, 아니다….

그러나 이 재판은 실제로는 정치재판이 아니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한명숙 전 총리에게 가해진 검찰발 공격을 친노세력에 대한, 야당에 대한 탄압이라는 간단한 말로 규정하지만, 실상 이 사건은 적대적 정치세력에 대한 보복의 차원을 넘었다.

이 재판은 살아온 날들의 필연적인 귀결로 정치에 들어선 한 인간이 자신의 인간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그 반대의 자리에 선 자들에 의해 당하는 보복이다. ‘평민대통령’ 노무현이 그토록 훌륭하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보아야만 했던 미움과 복수심은 우리 사회 주류기득권들의 허약한 자긍심을 웅변한다. 한명숙에 대한 공격도 마찬가지다. 한명숙처럼 살아왔고 한명숙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두려움이 보복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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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1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법정에서 나는 검사들이 한 총리에게 드러내는 적대감을 놀라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문화에 비추어 한 총리의 금품수수가 실제사실임을 믿어 의심치 않거나 또는 믿고 싶어하며, 인간관계란 어떤 방식으로든 이권을 주고받는 사이일 뿐 인간적 배려나 따뜻한 교감이란 상상조차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검찰의 눈에는 여성단체에 후원을 해준 곽영욱이 고마워서 식사에 초대한 한명숙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인사청탁의 대가로 뇌물수수를 했을지도 모르는 한명숙만 보일 뿐이다. 고마워하는 한명숙과 이권을 탐하는 한명숙, 한 인격 속에 이 두 가지 성품이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가? 나는 없다고 본다. 이것은 한명숙을 믿는다 아니다의 차원을 넘어,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 문제다.

검찰은, 친밀하다는 것을 뇌물 주고받는 사이로 바꾸어 말한다. 한명숙에게 그리고 한명숙을 신뢰하는 우리에게는, 친밀하다는 것은 삶의 고통과 기쁨을 나눠 가지는 사이를 말한다. 검찰에게 인간의 호의라는 것은 대가가 따르는 뇌물이지만, 한명숙에게 인간의 호의라는 것은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드는 친절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는 스스로의 올바름에 대한 신뢰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회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불신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사회생활에 서툰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충고가 세상 사람들이 다 니맘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였던 것을 기억해보면 정말 그렇다. 나는 번번이 타인을 믿었다가 손해를 보고 상처를 입는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들일 수 있을까? 한 총리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한 신문에서 언론인 한 분이 말했다. 일억 원짜리 시계와 공짜 골프라니, 한 총리는 부끄러워하라고. 정치하지 말라는 노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라고. 검찰의 노림수가 적중하고 있는 셈이다. 소위 개혁세력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으면 정치하지 말라는 소리다. 그럼 누가 정치를 해야 하나? 이 글을 쓴 언론인은 답을 가지고 있을까? 추측건대, 그 답은 아마도 이러할 것이다. 첫째, 정치는 더러운 것들이 하는 일이니, 더러운 것들에게 맡겨두라. 둘째, 기어이 정치를 하고 싶거든 니들도 더러워져라. 제발 잘난 체하며 깨끗하다 강변하지 말고.

아닐까? 너무한 추측일까? 추측을 거두어들이기엔, 그 글 속에 깔린 멘탈리티가 지나치게 분명해 보인다.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이 대중정치인으로서 일생 쌓아온 모든 것이 일억 원짜리 시계를 받았다, 라는 한 마디로 간단히 무시될 수 있는 무게였던가? 그 시계는 구경도 못해보았다고 한 노무현의 말은 싹 무시하고, 공짜골프 친 적 없다는 한명숙의 말도 싹 무시하면서 굳이 칼럼의 제목을 그렇게 뽑고 싶었던 그 기자의 멘탈리티를 나는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바로 이 사회 소위 주류와 주류추종자들의 허약한 내면이 증오를 타고 드러난 것일 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받았다 치자, 그러면 노무현의 정치적 업적이나 인간적 성취는 깡그리 무시되어도 좋은가? 박정희도 공과를 따지자면서?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민주주의를 한껏 꽃피운 대통령에 대해 고작 지니는 비난의 근거가 본 적도 없는 일억 원짜리 시계라면, 그 멘탈리티는 너무 가엾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러한 멘탈리티의 소유자들이 이 사회의 기득권이란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는 돈으로 권력과 이권을 사고 자리를 사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웃기는 것은, 이들이 힘과 돈을 동일시하고 잘도 주고받으면서도, 일단 들키면 그것을 죄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이들에게 한명숙 총리가 유죄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얼마나 큰 위안일까를 생각해본다.

그래서다, 한 총리는 유죄다. 곽영욱에게 실제로 돈을 받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돈을 받지 않아서 유죄다. 권력을 지녔던 자가 주류의 문화에 투항하지 않고, 높은 자리에 있던 자가 아랫것들에게 배려심을 지니고, 정치를 하는 자가 신뢰받을 행동을 하면서 살아왔다는 바로 그 사실이 검찰의 눈에는 유죄인 것이다. 이것이, 삼성에서 떡값을 받은 검사들은 기소하지 않으면서 한명숙을 오락가락하는 곽영욱의 증언만으로 기소하고 또 기소사실과 무관한 골프를 거론하는 검찰의 진정한 속내가 아닐까.

공판이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상처가 컸던 만큼 위안도 있다. 그 모든 수모를 견뎌내면서 아름다운 인간이라야 훌륭한 정치가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한명숙을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 나는 위로하고 싶은데, 위로를 받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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